'규원가', 규방 여인의 아픔을 노래하다
202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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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수능교육  국어영역 실장
@효정

조선 시대 사대부 여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글을 배우지 못했고,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야 했으며, 일부다처제 사회였기에 남편이 다른 여인과 살더라도 참아야 했습니다. 심지어 자식을 낳지 못하면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억울함과 한이 쌓인 사대부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 등을 시에서 녹여냅니다. 오늘은 규방 가사의 백미라 불릴 수 있는 '규원가'를 살펴보면서 조선시대 여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규원가! 시작합니다!

 

비운의 천재, 허난설헌

 

여러분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은 작가는 누구인가요? 적서차별의 모순과 탐관오리의 부패를 전면적으로 비판한 이 소설은 허균이 지은 작품입니다. 갑자기 웬 '홍길동전'이냐고요? 허균의 누나인 허난설헌이 '규원가'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난설헌은 시 쓰기에 재주가 뛰어났습니다. 글을 배우고 죽기까지 300여 수의 시와 산문 등을 남기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부인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것일까요? 난설헌은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을 찾지 않는 남편을 향한 원망과 그리움을 토로합니다. 남편을 ‘장안유협 경박자’라 칭하기도 하고, 야유원의 새사람을 만나기 위해 백마금편의 치장을 했다고 비판합니다. ‘장안유협 경박자’는 ‘놀기 좋아하는 경솔한 사람’을 ‘야유원’은 기생집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야유원의 새사람’은 새로운 기생을 의미합니다. 부인을 두고도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리는 남편.

 

그럼에도 난설헌은 남편을 그리워합니다. 비록 남편과의 인연은 끊어졌으나, 생각은 끊어지지 않았다고 토로하기도 하고, 계절을 나타내는 시어를 보여주며 일 년 내내 남편을 기다리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실솔에 자신의 마음을 이입하기도 하죠. 여기서 ‘실솔’은 귀뚜라미를 뜻하는 말로 주로 애상감을 드러내는 데 사용됩니다.

 

이런 해석들을 하다 보면, 화자는 남편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을 지녔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를 버리고 다른 여인을 만나러 가는 나쁜 사람이지만,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 남편과 애증의 관계였다고 예측해 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댁 및 남편과의 갈등과 그로 인한 자신의 불행 등을 작품에 기록하면서 난설헌의 아픔과 고통이 후대에 전해졌고 조선시대 여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남겨지게 되었다는 측면에서, 자신을 버린 남편에 대한 진정한 복수이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 외 남은 이야기들

 

허난설헌은 남편과 시댁의 불화, 자식의 죽음 등 개인으로서 견디기 힘든 일을 겪게 되었고, 스물여섯의 나이에 죽음 맞이합니다. 이후 동생이었던 허균이 그녀의 작품들을 엮어 문집을 내게 됩니다. 유교의 이념이 지배적이었던 사회에서 난설헌의 작품들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흐른 뒤 중국과 일본에서 난설헌의 작품들이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비록 육신은 사라졌으나, 작품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이지요.

 

지금까지 난설헌의 시 '규원가'의 내용과 그녀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문학을 공부할 때 단순히 시의 내용 파악에만 집중하다 보면 흥미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이런 시어는 어떤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 폭넓게 공부한다면, 단순히 시험 점수를 올리기 위한 공부가 아닌 교양과 상식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글을 다 읽은 후에 난설헌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요?